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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숲속 들꽃 예찬
  • 입상자명 : 유인근
  • 입상회차 : 15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우리나라 산과들 언덕에서 사시사철 피고 지던 많은 들꽃들이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다 눈을 마주치던 그 흔하디 흔한 깽깽이풀도, 마을 뒷산 양지바른 언덕 밑 무덤가에 수줍은 듯 고개 숙여 피어나던 할미꽃도,
한여름 밤 마을 어귀 길섶에 함초롬히 피어나 함께 달마중하던 노란 달맞이꽃도.
어느 틈엔가 우리 곁을 떠나 싶어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잊혀 진 존재가 되었다.
어릴 적 추억을 같이하던 그 많던 들꽃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그립기만 하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 365번지.
서울에서 남동쪽 용인과 안성의 경계지역 드넓은 숲속에는 우리의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들꽃들이 가족처럼 한곳에 모여 살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양지 IC를 나와 17번 국도를 따라 백암방면 으로 가다보면 근곡 4거리와 만난다. 그곳에서 우회전 하여 다시 329번 지방도를 따라 삼죽방면으로 10여분을 가면 눈앞으로 제법 우람한 산이 펼쳐진다.
그 산자락 북서향으로 흘러내린 숲속에는 가까이 다가가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구분이 안 되는 온갖 진귀한 보석들이 가득 숨겨져 있다.
그 보석들은 다름 아닌 그 옛날 어디선가 한번쯤 눈 맞춰 보았을 법한 들꽃들이다.
야트막한 숲은 시골 외갓댁 처럼 친근하고 편안한다.
산자락으로 난 길을 따라 발을 옮겨 놓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소리, 새소리가 정겹다.
구불구불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싱그런 풀내음과 향긋한 꽃내음이 밀려온다. 식물도감을 펼쳐 보아야 꽃 이름을 알 수 있는 야생식물들로 가득하다.
키 큰 나무들과 키 작은 나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숲속.
자연 그대로의 지형에 식물의 서식지를 만들어 놓아 고향 뒷동산을 찾아온 것처럼 아기자기 하다.
숲속 길섶 나무아래, 돌 틈 사이로 피어난 형형색색 어여쁜 들꽃들.
홀로 외로이 또는 무리지어 어느 것은 소박하게 또 다른 꽃은 탐스럽게 피어나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산속 구석구석에서 자라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꽃식물들은 옮겨 심었다기 보다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서 나고 자란 듯이 보인다.
빼꼼히 돌 틈 사이로 보 일듯 말듯 피어난 앉은뱅이 꽃도 첫눈엔 심심 한듯 하나, 꽃에 눈 맞추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볼수록 꽃이 지닌 매력에 흠뻑 빠진다.
이곳 자연공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알려면 몸의 자세를 낮춘 채, 거북이 걸음걸이를 해야 한다.
가만히 귀 귀울이면 그들의 속삼임이 들려오고, 마음이 느낌으로 전해져온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마음속 문을 활짝 열고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생김새 만큼이나 신기하고 재미난 이름을 갖고 있는 들꽃들. 이파리에 얼룩이 많아 이름 붙여진 ‘얼레지’묘한 어감의 꽃 이름과 달리 연분홍 고운자태를 뽐내는 ‘개불알꽃’.
4월부터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가장 오랜 시간동안 꽃을 피우는 ‘매미꽃’.
지름이 1미터나 되는 이파리가 달려있는‘큰병풍쌉’.
이파리가 치마처럼 둥근‘처녀치마’.
꽃받침이 매의 발톱처럼 생긴‘하늘매발톱’.
향기가 아침저녁으로 백리까지 뻗친다는 ‘섬백리향’.
벌써 오래전 이곳으로 옮겨져 새로운 안식처를 찾은 이들 하나하나 마다의 귀한 생명체들은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이름을 갖고 꽃으로 피어나 빛을 발하고 있다.
“어 깽깽이풀 아냐, 여기서 보네” .
이곳에선 가끔 감회어린 상봉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어린 시절들에서 소 풀을 먹이거나 나물을 캐면서 흔히 볼 수 있었던‘들풀’을 만나 반가움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고향의 옛 친구 같은 홍자색 꽃무더기 앞에 마주앉아, 이리저리 매만지며 한참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반가움을 나눈다.
깽깽이풀과의 추억담을 나누는 얼굴은 어느새 어린 날의 동심으로 돌아가 있다.
엄마가 물동이를 이고 가던 물가에 많다고 해서‘동의나물’.
한창 바쁜 시골의 모내기철에 바쁜 일꾼들을 놀리듯이 저 혼자만 한가롭게 꽃을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깽깽이풀이다.
꽤 오래전 이곳은 그저 평범한 야산이었다.
듬성듬성하니 산언덕 곳곳에 몇 그루의 나무밖에 없는 보잘것없던 민둥산 이었다.
다양한 나무와 식물이 하나 둘 옮겨져와 숲을 이루게 되면서 작은 풀벌레들도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풀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자 곤충들이 모여들었고, 이름 모를 새들과 다람쥐, 청솔모, 두더지, 꿩과 두루미까지 날아들었다.
자연 본래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풀’이라는 모든 생명의 근원, 그 자연의 이치가 깃들기 시작된 것이다.
이산 숲속의 한 뼘 잔디 밑 땅속에선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서식한다. 그로인해 주변의 풀벌레와 개미들이 모여든다. 더불어 새들이 날아들고, 크고 작은 동물들까지 찾아와 낙원을 만들었다.
이들 모두는 숲에서 나고 죽는다. 그리고 이들의 살과 뼈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수천만개의 미생물을 살게 한다. 이렇듯‘풀’은 자연 생태계 먹이사슬의 첫 매듭이다.
모든 생명은 풀에서 시작되어 다시 풀로 돌아간다. 보잘것없는 작은 풀 하나가 이렇게 아름답고 울창한 숲을 만들어 주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산책하듯 식물원 전체를 한 반퀴 다 돌아보는데 만도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도심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유치원 어린아이들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 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린 날 소풍을 와서 놀듯 이곳을 찾는다.
숲으로 난 여러 갈래의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해 가든 온통 나무 숲길뿐이다.
숲길을 걸어가며 고요히 생각에 잠긴 나무들의 몸통을 어루만져 본다. 나무들의 생각이 손을 타고 마음으로 까지 전해져 온다.
검붉은 빛깔의 흰줄무늬를 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날개를 나풀나풀거리며 날아들더니 은사시나무 옆 산초나무 잎 새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호랑나비다.
요즘 보기 드문 호랑나비를 이곳에선 쉽게 볼 수 있다.
호랑나비는 산초나무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산초 나뭇잎을 먹고 살아간다.
산호랑나비는‘백선’이라 불리는 식물에, 애호랑나비는 족두리풀에 모시호랑나비는 기린초에 기대서 살아간다.
산초나무, 백선, 기린초가 있어 호랑나비들은 산과 들을 날아다니며 자연을 아름답게 수놓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해준다.
이른 봄, 양지바른 곳에 무리지어 피어나 봄을 알리는 복수초, 얼레지, 노르귀. 이들이 남보다 일찍 꽃을 피우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꽃을 피워내기 위해선 인간의‘출산’과 같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더욱이 추운겨울 언 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겨우내 눈밭에서 먹은 것 없이 쏟아내야만 하니 제 몸을 태울 수 밖 에 없는 것이다.
키 큰 관목 밑에서 생장하는 식물은 햇볕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들은 이른 봄 씨앗을 맺기 위해 필사적으로 꽃을 피운다.
숲속 곤충이 활동하는 오전 10시에서 오후3시 까지만 꽃을 피운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벌과 나비가 활동을 하지 않으니 꽃잎을 닫는다. 일단 수정이 되면 꽃을 떨군다.
뱃속의 아기, 즉 씨앗을 튼실하게 키우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씨앗을 퍼뜨리고 나면 이 풀들은 오랫동안 긴 휴면에 들어간다.
사람들 표현대로 라면 죽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고 미련 없이 가는 것이다.‘삼지구엽초’나‘깽깽이풀’은 씨앗에 작은 풀을 담고 있다. 그 풀로 개미들은 유인하여 씨앗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처녀치마’의 꽃대가 50센티까지 길게 웃자라는 이유는 그 씨가 바람에 날려 멀리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팽이 눈은 꽃잎의 크기가 2-3미리에 불과하다. 꽃이 너무 작아 벌, 나비가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꽃이 필 즈음이면 초록빛이던 잎이 노랗게 변한다. 그것이 꽃 인줄 알고 왔던 벌과 나비들이 본래의 꽃을 찾아 수정한다.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은‘금강초롱’이나‘에델바이스’같은 고산지대에서 피어나는 꽃을 좋아한다. 키는 작지만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진하기 때문이다. 꽃은 보통 3월말에서 10월말까지 산다. 그러나 해발 8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살아가는 식물의 생존기간은 이 짧은 기간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퍼뜨려야 한다.
식물들은 저마다 생존을 위해 눈물겹도록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시화 물결이 가속화되기 전 지금은 어른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시골생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른 봄 모내기를 하며 하루종일 논두렁을 누비고, 밭이랑을 일궈 고추, 감자, 고구마를 심거나, 무, 배추를 재배하며 땀을 흘리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우리 산야에는 수많은 들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그때는‘잡초’또는‘잡풀’정도로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지만,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생활주변에 분포하는 식물종이 풍부했던 그 당시 우리 모두는 자생식물이 지닌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식물 종에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식물 종에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식물을 채집하여 자국으로 가지고 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꽃이 아름다운 백합류를 비롯 원츄리, 비비츄 등의 다년초 식물들로 유럽, 미국, 일본 등지로 이송되어 갔다.
이들 나라는 우리 땅에서 가져간 식물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복원을 거듭하여 종을 개량하여, 지금은 개량된 식물을 우리가 역수입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물은 인간의 삶과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는 필수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한부분이며, 전체 생태계의 균형유지를 위해 노력 하고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종자는 상호 의존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산림파괴와 무차별 개발로 인해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식물들이 사라져 갔고, 지금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식물들이 멸종위기의 위험에 처해있다.
인간의 주곡으로 쓰이는 식물은 20여종에 불과하다.
특히 야생식물 종자 가운데는 의약품 원료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많다.
400여개 이상의 식물종이 처방약품의 원료로 쓰여 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약 30여종의 야생종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 종 가운데 상당수는 생육환경의 악화로 멸종위기를에 처해있고, 약용식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식물전문가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종의 다양성이 파괴되는 것은‘핵전쟁’못 지 않은 무서운 일로 보고 있다.
이들 주요 식물이 멸종위기를 맞거나, 사라지는 것은 의약품 자원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은 이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곳 식물원은 지닌 30여년동안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던 자생식물을 보관시키는데 땀 흘려 왔다.
악화된 환경 속에서 멸종위기에 처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자생식물들은 살려 가꾸어왔다.
이곳 숲속에 가득히 피어나 밝게 웃고 있는 꽃식물들은 이처럼 따뜻한 손길이 미쳐 관리되고 보살펴진 덕택이다.
30년이 넘게 긴 세월동안 들꽃식물들과의‘깊은사랑’에 빠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자식 보살피듯 숲을 가꿔왔다.
이들이 흘린 영롱한 땀방울이 식물원 나뭇잎 새와 풀잎 풀잎마다에 이슬처럼 맺혀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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